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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존 회복자님의 단주 수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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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작관리자 작성일21-08-04 10:36 조회2,3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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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끝

"집으로 돌아와라."

시린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의 초입.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한 겨울에 얼어붙은 풀잎사귀 마냥 지치고 약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싫어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의 '엄마가 많이 아파.'라는 말에 급하게 광주에서 홀로 떨어져 살던 삶을 정리하고 8개월 동안 다녔던 직장에 사직서를 냈다.

2년 만에 고향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를 반겼던 것은 갓 게워낸 토사물의 냄새였다. 순간 들이치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붙잡고 밀려 올라오는 역한 느낌을 바깥에 내밀려 했을 때 발견한 것은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술 취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10년이란 긴 세월을 무직자로 살았다. 매일의 생활비는 필요한데, 어딘가에서 벌어오는 돈은 없어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가난하게 살았다. 식탁에 김치 말고 다른 반찬이 하나라도 올라오면 고마울 정도로... 그 어려운 세월을 엄마는 아등바등 하며 버티고 버텼다. 그러다 병이 났나 보다. 악으로 버티던 세월이 엄마에게 독이 되어 병으로 남았다.

엄마는 추위 속에 벌겨 벗겨진 채 내쳐진 동물처럼 몸을 떨고는 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으면, 싸늘한 바람이 뺨을 내리치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틈만나면 술을 찾았다. 집 안에 있는 술병을 모두 치우고 숨겨도 귀신같이 찾아내 술을 마셨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이었기에 언제나 그 끝은 눈물과 울부짖음이었다. 왜 술을 마시냐는 질문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워서 그래. 너무 아까워서·····."라는 울음 섞인 답만 내려놓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취한 엄마의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괜찮냐, 미안하다'라는 말을 건네기에는 아버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 그저, 미안하다는 눈빛. 엄마가 자신으 인생을 불쌍하다 느끼는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 그 탓인지 아버지는 더 이상 엄마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런 행동들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동생이 군대에 입대를 하고, 나마저 광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버린 시간 동안 엄마는 힘든 나날을 술을 마시며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 혼자서는 엄마를 보살 필수 없었고, 엄마를 옆에서 돌볼 사람이 필요했기에 아버지는 힘겹게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엄마를 도와달라고.

엄마가 술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든 술병을 버리는 일이었다. 숨겨두면 몰래 찾아 마셨기에 집 안에 술이란 술은 모두 휴지통에 버려버렸다. 술을 사러 나가지 못하게, 밖에 나갈 때는 항상 함께 나갔다. 엄마가 술을 찾을 때면, 엄마의 두 손을 마주 잡고 엄마의 눈을 보고 대화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대화했다. 엄마가 술을 찾지 않을 때까지.

내 손끝의 온기를 엄마의 손끝으로 보내며,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끊임없이 대화했다. 인생에 힘든 부분은 누구나 있는데, 엄마가 유독 독하게 겪는 거라고. 이 혹독한 시기가 곧 끝나면, 우리에게도 빛나는 시기가 올 거라고. 찬바람이 언제까지 불지는 않는다고, 곧 그친다고 말하며 어르고 달랬다. 그런 날을 기다리며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자고 엄마를 다독였다.

엄마는 원래부터 여린 사람이었다.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기에 유약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버리듯 도망치고, 나 혼자 살아보겠다고 떠난 세월이 미안했다. 그래서 더 엄마의 손을 놓지 못했다. 끊임없이 엄마에게 관심을 쏟았다. 항상 내가 엄마 편이라고, 누가 뭐라 해도 엄마 편이라고 다독였다. 모든 짐을 혼자서 떠맡지 말자고, 같이 나누자는 내 말에 엄마는 점점 닫힌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나보다. 엄마는 술을 찾는 시간보다는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에 대해 고장 난 카세트 테이프처럼 되풀이 하던 대화가 이후에는 조금씩 텅빈 베란다를 예쁜 꽃 화분으로 꾸미고 싶다는 것에서 부터, 수영을 배우고 싶다거나 여행을 가고 싶다는 희망찬 대화로 변해갔다.

엄마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구나 느낄 때쯤, 10년 만에 아버지가 월급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오랜만에 환한 미소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 옆에 툭 월급봉투를 내려놓았다. 엄마는 거품 묻은 손으로 그 월급봉투를 껴안고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엄마가 자신의 병을 극복하는 동안,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었나보다. 하루라도 빨리 엄마가 행복해 할 수 있도록,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을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게, 조용히 묵묵하게 아버지도 애쓰고 있었나보다.

"이걸로 급한 것부터 해결해봐." 정말 오랜만에 건넨 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소중한 듯 끌어안은 월급봉투를 놓지 않고서 밝게 웃었다.

아버지가 돈을 벌러 나가고, 엄마와 나만 단 둘이 남은 집 안에서 엄마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 내게 속삭였다. "네 아부지, 옷부터 사야겠다. 헤진 옷 입고 나갔다가 무시당할라."

절망을 이야기하던 엄마가 이제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꺼리던 사람이 아버지를 이야기하며 웃었다.

"오랜만에 네 아부지가 좋아하는 찬거리 좀 해놔야겠다."

언제 아버지를 원망했냐는 듯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며, 아버지를 위한 저녁을 준비했다.

엄마의 마음속에서 불던 차가운 바람이 자취를 감추고, 혹독한 겨울이 끝났다. 그 겨울의 끝에 엄마는 자신의 병을 떨쳐냈다.​

 ♣ 단주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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