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존 회복자님의 단주 수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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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작관리자 작성일21-07-05 10:04 조회2,497회 댓글0건본문
산후우울증
세상 돌아보기 43
아이를 낳고 나서 찾아오는 엄마의 병, 산후우울증. 그 병은 나에게도 왔었다. 지금 돌아보면 우울증의 연장이었는지 아니면 아이를 낳은 후 산후우울증이 보태어진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의 내면은 어린 시절부터 항상 우울함을 담고 있었고 아이를 낳은 후 참았던 술을 다시 마시면서 우울증이 급속도로 깊어진 건 확실하다. 정리하자면 우울한 내면과 술로 인한 우울증, 산후우울증이 복합하여 나타난 게 아닐까.
아무튼 그 시기엔 우울함과 두려움이 함께 있었는데 아이를 낳기 삼 일전, 남편이 다른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상황이 무척 두려웠다. 꼬물거리는 작은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 혹여나 부서지지는 않을지 또 아프면 어떻게 할지 항상 노심초사했다. 그것을 잠재우려 찾은 것이 술이었는데 이미 알코올중독으로 접어든 나는 술을 조절해서 마시기가 참 힘들었다. 힘이 날 만큼만, 두려움을 없앨 만큼만, 잠이 쏟아지지 않을 만큼만 마셔야 했는데 그게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최근 강원도 고성에 있는 엄마 집에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다. 엄마와 함께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는데 나이가 어린 한 엄마가 아이를 창문 밖으로 던진 사건이 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는 생명을 잃었고 아이 엄마는 구속되었는데 정신감정 결과, 산후우울증이 있었다고 한다. 산후우울증이 아이의 생명을 해칠 정도로 무서운 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일이 진짜 있었다고 하니, 무언가 가슴을 예리하게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뱉은 말.
"차라리 나처럼 술이라도 먹지"
엄마가 나를 돌아보며,
"에구, 쓸데없는 소리 한다." 라고 하신다.
사실, '술을 마시고 희미한 정신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맞았을까? 술을 마시며 두려움을 달래지 않았다면 나도 산후우울증을 해결하지 못해 아이를 해치고야 마는 비극으로 치달았을까?' 하는 물음이 올라오지만, 대답은 할 수 없다. 그리 살아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산후우울증과 그로 인한 술로 위태롭게 자란 아이가 이제 나보다 더 크다. 어느 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이가 우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길래 무얼 쓰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앞으로 어디에 목표를 두고 어떻게 살아갈지 적고 있는 것이란다. 내일 아침에 엄마에게도 보여줄 테니 읽어보라 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아이의 노트북을 열어 글을 읽어보았다. 주요 골자는 '자신은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으며 그것이 남들이 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적은 것이었다. 평소에도 생각이 넓고 깊은 것은 알고 있었으나 직접 글로 확인하고 보니 참 기특했다. 허나 쓴웃음이 나는 것은 무엇일까. 술과 함께 내 인생의 암흑기였던 30대를 고스란히 함께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큰 흔적인 듯하여 뿌듯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엄마의 회색빛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아이는 그것을 해결하고자 밝음을 일부러 찾아 나서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미안함. 그 안쓰러움이 자꾸만 가슴과 머리를 잇는 한 부분에 체한 듯 막혀 있는 것 같아 컥컥 마른기침이 새어 나왔다.
그런 엄마에게 아이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엄마가 저에게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무언가를 남긴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는 거죠? 괜찮아요. 그게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거고, 저는 그런 제가 참 마음에 들거든요."
산후우울증이든 술로 인한 우울증이든.... 더 돌아가 나를 원천적으로 우울함에 머물게 했든, 암울했던 유년기로 인한 것이든 지금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이의 말처럼
'지금의 나'
가 있을 뿐이다. '지금의 나'가 나 역시 '괜찮다'고 여기고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의미가 없는 순간은 없었다. 그 순간들이 모두 깊은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고 그들이 모이고 쌓여 지금이 있으니 괜찮다.
'감히 행복하다!'
라고 고백한다.
- 대전 목동 조.
♣ 단주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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