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존 회복자님의 단주 수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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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작관리자 작성일21-06-02 11:55 조회2,677회 댓글0건본문
아빠는 알코올중독자?
아침에 일을 나가면서 버릇처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겁니다.
오늘은 날씨가 더운데, 잠은 주무셨을까?
오늘은 비가 오는데 어디 쑤신 곳은 없으실까?
어깨가 아프시다고 하던데 좀 나아지셨나?
어제보다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조심조심 걸어다니고 계신걸까?
이유가 있어 전화할 때도 있지만 이유없이 전화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분명 이유없이
전화를 했는데, 통화하다보면 전화한 이유가 있었더라구요. 아, 그래서 전화를 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이날도 사실은 안부차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통화를 하다보니, '아, 그래서 전화를 했었구나' 싶었습니다.
바로 친정아빠.
"그 인간, 보고싶지도 않다. 돈 좀 번답시고, 사람무시하고. 술 마시고 들어오면 자는 너희들 다 깨우고, 안 일어나면 '새끼들이 아빠도 안 들어왔는데 잔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내가 그거 막느라고 싸우면 너희들은 한쪽에서 울고, 자다깨서 머리 처박고 졸고. 그러면 막 욕하면서 물건 던지고. 난 그 꼴 못 보니까 "왜 그러냐"며 대들면, 또 대든다고 때리고. 허리띠 풀러서 막 휘두르고. 그렇게 미친 개처럼 혼자서 날뛰다가 혼자 나둥그러져서 잠이 들면, 다음날 언제 그랬느냐면서 일어나 미안하다고. 너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없이 몰래 일나가는 날도 많았지. 지금도 이렇게 기억이 생생하니."
정말 그랬었는지 저는 기억이 안납니다. 엄마와 아빠가 엄청 많이 싸운 기억은 납니다. 얼마나 싸웠는지, 무슨 전쟁이 일어난 것 같은 날들이 생생합니다. 아빠가 허리띠로 엄마를 때린 건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엄마는 죽는게 났다면서 전화기 줄로 목을 감고 서로 죽자며 육탄전이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쥐약이라면서 아빠 앞에서 마셨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이 토막토막... 어렸을 적에 아빠를 그렇게 많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얼마나 무섭고 이상했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생생하답니다. 어제 일 같답니다. 아빠가 저 세상으로 가신지 이미 10년이 되어가는데도, 엄마는 엊그제 있었던 일 같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알코올중독자였던 것 같습니다. 아빠의 알코올중독자 피를 고스란히 제가 받았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여자라서, 그렇게 미친 개처럼 날뛰지는 않았습니다. 단, 이런 말은 들어봤습니다.
"너 누구야? 왜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되냐?
술 먹은 너는 다른 사람이야, 넌 도대체 누구야?"
라는.....
엄마에게 아빠는 술을 마셨을 때와 술이 깬 뒤가 너무도 달랐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술을 마시면 아주 딴 사람이 되었답니다. 저와 술을 마셨던 사람이라면 다시 술을 마시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두 얼굴의 여인내?
그리고 아빠는 술을 너무도 좋아하셨습니다. 가족끼리 식사라도 하러 갈라치면, (술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에서) 빈
페트병에 소주를 담아서 몰래 마시는 일은 부지기수였고, 모임이나 놀러가는 날이면 술 앞에서 하루 종일 벗어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고도 늘 운전을 해 집에 돌아오셨고, 우리 가족은 그 옆자리에 타고 아무 의심없이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힘들면 술 한잔이 보약이다라는 이야기를 숨 쉬듯이 들었고, 약보다 술이 더 좋다, 밥보다 술을 먼저 먹어야 한다, 빈 속에 마시는 술이 최고다!라며 술을 예찬하신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렇게 듣고 자라서인지, 저 또한 빈속에 마시는 술이 최고였고, 밥보다 술을 먼저 마셨으며, 술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했답니다. 당연히 패트병에 소주 담아 가방 안에 차곡차곡 넣어 다니는 건 부지기수, 술 마시고 운전하기, 그것도 술 마시고 아이들까지 태우고 운전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 지금 생각해보면 최악의 사건들이었다고 봅니다. 그렇게 술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거, 그리고 술 마시고 한 행동은 모두가 다 용서가 된다고 깊이 믿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각본에 짜여진 절차대로 알코올중독자가 된거였습니다.
나중에, 알코올중독자임을 시인한 후,
'난 왜 그렇게 아빠와 비슷했을까?'
하며 궁금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을 때, 이런 인터넷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2011년 6월 17일에 발표된 13-16세 연령의 총 5700명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모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향후 규칙적으로 술을 마실 위험이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Ipsos MORI연구팀, 2011). 그리고 아이들이 술을 마시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자는 부모의 영향으로 부모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단 몇 번 본 경우라도 아이들이 향후 습관적으로 술을 마실 가능성이 2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어릴 적 술을 시작할 경우 향후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고 술을 자주 마실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히며 "아이들이 술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메디컬투데이 이 ㅇㅇ 기자)
지금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쉬면서,
'참 다행이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아주 위험한 상황은 피한 것 같으니 그러니 늘 단주하고 맑은 정신을 갖는데 최선을 다해야 해.'
라고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내 아빠가 저에게 '술은 참 좋은거야'라고 말했던 것처럼, 저도 우리 아이들에게 '술은 참 좋은거야'라고 말할 뻔 했으니까요.
지금은 '맑은 정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줄 수 있어 무조건 감사할 뿐이다.
- (중계박) -
♣ 단주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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