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중독 회복자님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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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작관리자 작성일22-01-11 11:12 조회2,074회 댓글0건본문
만남과 축복,
희망을 선물하다
20대 중반에 친구에 권유로 필로폰이라는 마약을 경험하게 된다. 호기심이 많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던 나여서일까 마약을 투약하는 것이 범죄행위인줄 알면서도 그날은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내 친구에게 팔을 내밀고 주사기에 들어있는 필로폰을 혈관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단 한 번의 체험, 그 한 번의 쾌감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깊게 내안에 새겨졌다. 그렇게 나는 마약이라는 늪에 빠져버렸고, 마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으로 10년을 살았다. 마약을 택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고 또 모든 사람이 떠난 후, 나는 넓은 세상에 홀로 버려졌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둡고 아득한 터널 속, 끊을 수 없는 사슬에 묶인 노예처럼 나는 그렇게 한참을 끌려 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25층 아파트 난간 위에 서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나의 고통과 외로움과는 전혀 상관없이 너무나 평온했고, 행복해 보였다. 내 힘으로는 이길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이 더러운 운명을 끝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편안해지는 죽음을 생각했다. 난간 앞의 허공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7살 난 딸아이의 얼굴이 불현 듯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아빠라고 부르며 해맑게 웃는 딸아이의 얼굴이 ·····.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고, 서러움에 한참을 미친 듯이 울었다. 아내가 떠나버린 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딸아이를 두고 나는 자살 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대로 난간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대로 평생을 마약 중독자로 살고 싶진 않았다. 어딘가에 여기서 벗어날 길이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지긋지긋한 마약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써 마약으로 구속되어 처벌을 받은 것도 두 번. 금방이라도 다시 내 인생이 철창 안에 갇혀버릴 것만 같아 너무나 두렵고 힘들고 외로웠다.
그때 문득 교도소 안에서 교육을 주관했던 ‘마약퇴치운동본부’가 떠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본부장님을 찾아갔다. 마약을 한 사실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죽기를 작정한 만큼 내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본부장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동안 내가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을뿐만 아니라, 나의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상담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이 되었고 희망이 보였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의 상담을 거쳐 회복자 자조모임인 NA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 모임을 통해서 많은 도전과 용기를 받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마약치유뮤지컬 “ㅁ션”의 배우로 캐스팅되어 나와 같은 회복자를 비롯한 전문배우, 자원봉사자 등의 여러 사람과 어우러져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함께 연습하고 뒹굴며 준비한 공연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었다. 많은 중독자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중독의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회복된 이후에 회복자가 그들과 같은 더 많은 중독자들을 살리는 사명자로 세상에 당당히 서게 되는 과정을 담은 공연의 내용이 관객들에게 주는 감동도 컸지만,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조금씩 치유되는 힘을 얻게 되어 두렵기만 했던 세상에 한발 내딛을 수 있는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환호를 받는 공연을 끝내고 각자 원래의 자기자리로 돌아가게 되자, 나는 또다시 공허함과 외로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의 분주함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는 잘 이겨냈던 것 같은데 ‘혼자’ 남겨지면 나는 여지없이 외로움과 공허하다는 생각에 붙잡혀 내 행동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집에 혼자 있는 그 시간이 되면 나는 다시 마약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거와 똑같이 계속해서 마약을 해야만 나의 상태를 보면서 나는 큰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회복자와 재활팀장이 함께 살며 생활하는 그룹홈으로 들어가서 다시 단약을 할 수 있도록 내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었다.
그룹홈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원망과 불평거리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들을 통해서 여태껏 몰랐던 내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 같았던 마약중독의 문제보다 중독으로 갈 수 밖에 없고 실패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오래된 나의 진짜 문제들을 알아가며 치유 되어지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뮤지컬 ‘ㅁ션’의 미국 공연 기회로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선진국이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진 심각한 마약문제와 그 마약으로 무너진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회복자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다. 자살을 선택할 만큼 힘들었던 내 지난 과거의 시간들이 나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마약중독의 늪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의 희망이 되는 증인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 소망 속에서 과거의 많은 문제와 상처들이 치유되어 발판으로 하나씩 쌓여가고 있다.
그룹홈에서의 4년, 뮤지컬배우로서의 5년. 내 인생의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었고, 내 자신을 바르게 찾을 수 있는 희망의 시간이었다. 현재 나는 나와 같은 중독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돕는 중독재활팀장이 되었다. 내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기적 같은 일이다.
지나간 과거의 많은 잘못들을 경험의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중독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고 살리는 사람으로 헌신하는 것이 회복자의 삶을 지속 할 수 있는 힘이고 진정한 회복의 열쇠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질문한다. 이제는 마약을 안 할 자신이 있냐고.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마약은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죽기 전까지 안해야 끊은 것이니 죽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찾은 마약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답과 힘을 매순간 붙잡고 지속한다”고....
나는 누구도 겪고 싶어 하지 않는 그 마약중독의 문제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가장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마약중독으로 무너지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나의 진짜 문제들. 그리고 그 문제들을 알게 된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르게 알고 내 삶의 진짜 이유를 찾을 때 갖게 되는 자유함과 평온함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고 참된 행복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부족하고 모자람이 많은 내가 교도소나 대학교, 소년원 등의 자리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기면 나는 늘 한 가지를 강조한다. 눈에 보이는 문제를 없애려고, 현실상황을 바꾸려고만 하지 말고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갱신하는데 집중하다 보면 내가 변화되는 만큼 그 문제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고. 그런 자기발견과 변화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을 알고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 같다.
지금껏 내 인생을 만들어온 많은 부분들을 사실적으로 볼 때, 나를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내면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것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게 되면 그때부터 나를 변화시킬 실제적인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고 확신한다.
나의 남은 인생동안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살리고 돕는 일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려한다. 내가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도 마약치유뮤지컬 ‘ㅁ션’을 통해서 새로운 치유문화 형성과 사람들에게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고 또 그 중독의 문제에서 회복한 모델이 되는 배우로 많은 중독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마약의 위험보다 마약의 고통 속에 있는 자를 안아줄 수 없는 사회가 더 위험하다. 마약은 특별히 나쁜 사람이 특별한 과정에서 중독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도 충분히 올 수 있는 문제이다. 정말 우리 사회가 이러한 중독의 문제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안아 줄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되길 바라며 부족한 회복수기를 마친다.
♣ 단약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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